오늘도 어김없이 개암사 탐방 도우미 일자리 활동을 하기 위해 준비물인 수거용 집게, 주워 담을 쓰레기봉투, 노인 일자리 조끼를 착용하고 개암사를 산행하며 ~
지난날의 아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어릴 적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겨우 중학교만 마치고 야간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단돈 3천 원을 움켜쥐고 무작정 상경, 인천의 작은 회사에 취직하여 잡무를 하게 되었다.
그곳은 업종이 큰 회사의 하도급을 받아 주택 자재를 공급하고 주택을 공사하는 회사였다. 10년 동안 회사에 근무하며 기술도 습득할 수 있었고, 1995년에는 본인도 소규모 건축회사를 경영할 수 있게 되었다.
2000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회사경영도 어려워지고 홀로 되신 모친도 건강이 나빠져 2005년에는 부안으로 귀향해야만 했다.
그동안 농사에 전념하였지만 힘들기만 하였고 실익이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 고향인 부안에서 선후배체육회가 있는 상록회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각종 업계에 분포된 지인들을 알게 되었고 바쁘게만 살아온 나에게는 살아가는 활력소가 되었다.
2010년부터는 노래방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2013년에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노래방 사업이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자 과거, 배움의 갈망으로 야간고등학교
진학차 무작정 상경했던 기억이 떠올라 지역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교육계통에 있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부안여중생에게 장학금을 4년 동안 주게 되었고, 경찰에 근무하는 지인의 소개로 손길이 못 미치는 소외된 불우한 이들에게 매년 명절이나 연말에 백미 20kg을 20포씩 전달 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2019년에는 건강 상황이 나빠져 노래방을 그만두게 되었고, 모친의 병환이 깊어져 2022년에는 모친을 여의게 되었다.
그 후 개암사를 매일 산행하여 건강을 찾았고 여러 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대한노인회 일자리 사업이 있다는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5년도부터는 개암사 탐방 도우미로 활동하면서 보람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김**씨는 탐방 도우미를 하면서 좋은 점은 탐방객들과 건강에 대한 정보 공유,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깨끗한 국립공원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 나이가 들어도 출근할 수 있는 일자리, 일자리 활동으로 얻어진 수입으로 지인들과 식사 등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라고 했다.
대한노인회 탐방 도우미 일자리에서 김**씨는 보릿고개 시절을 겪어왔었기 때문에 비 온 뒤에 굳은 땅이 되듯이 더욱 탄탄해지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훈훈한 정을 지역사회에 나눔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방송단 작가 이명례